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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일기] 제9화 : 예쁜 50을 준비하는 나의 30분 한동안 멈춰있던 일기장을 다시 펼칩니다.가게 매출 걱정에, 밀린 숙제 같은 일상에 치여 정작 나를 돌보는 일에는 참 인색했던 한 달이었습니다.문득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낡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 열기 속에 파묻혀 지내느라,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사는지조차 잊고 살았더군요.이제 저는 조금씩 '예쁜 50'을 준비해 보려 합니다. 세월이 흐르는 건 막을 수 없지만, 그 결을 아름답게 가꾸는 건 나의 몫이니까요.거창한 계획은 아닙니다. 퇴근 후, 가게 조명을 끄고 나서 딱 30분. 나를 위해 걷기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가게에 매달려 있느라 굳어버린 몸을 깨우고, 복잡한 생각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속에 털어버리는 시간입니다.누군가에게는 고작 30분이겠지만, 종일 타인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2026. 4. 1.
[해방 일기] 제8화 : 팔순 아버지와 온천, 그리고 '초라함'이라는 이름의 손님 지난달, 온 가족이 함께 온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팔순을 맞이하신 아버지, 어머니, 두 딸, 그리고 곁을 지켜주는 동반자까지.가게 매출은 반토막이 나고, 한 푼이 아쉬운 시절이라 사실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셨나 싶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장거리 운전도 어려우시고, TV 속 예쁜 여행지는 그저 '그림의 떡'일뿐인 부모님.아이들도 함께 여행을 간 지 1년이 훌쩍 넘었으니, 겸사겸사 짧은 1박 2일 길을 나섰습니다.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꿈결 같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현실의 무게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시간을 낼 여유도, 돈을 쓸 여유도 없는데 이런 걸 누려도 될까...'별것 아닌 여행길인데도, 왜 나는 이렇게 마음 편히 웃지 못하고 계산기를 두드.. 2026. 3. 10.
[해방 일기] 제 7화 : 여기까지 일까... 한동안 '해방 일기'가 소홀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 차마 하얀 화면 앞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비수기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보았지만, 올해 들어 반토막 난 매출 전표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시리고 아픈 일이었습니다.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 사이로 활기가 넘치던 공간. 이제는 손님들의 웃음소리 대신 시계 초침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텅 빈 테이블을 행주로 닦고 또 닦으며, 나는 내 불안의 먼지를 털어내려 애써 봅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가게 조명을 하나둘 끄고 나면, 썰물처럼 밀려오는 두려움에 속수무책으로 잠기곤 합니다."정말... 여기까지 일까."내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이제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진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은 이내 거대한.. 2026. 2. 14.
[해방 일기] 제6화 : 요양병원 어머니의 눈물 섞인 외출, 그리고 따뜻한 국물 한 그릇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리움, 요양병원 어머니의 서운한 진심을 뜨거운 전골 국물로 위로해 봅니다."모두가 잠시 숨을 고르는 오후 3시 30분, 브레이크 타임의 정적을 깨고 전화기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은 수화기 너머로 나이 지긋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언제 문을 여나요? 지금 근처인데..."아직 오픈 준비도 덜 된 시각, 쓱 하고 열린 가게 문으로 휠체어를 탄 백발의 할머니와 아드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오전에 가끔 노모를 모시고 오시던 반가운 단골분이셨지요. "어머니가 지난번에 여기서 참 맛있게 드셨다고 하셔서요." 아드님의 그 한마디에 저는 서둘러 앞치마를 고쳐 매고 주방 불을 켰습니다.전골이 보글보글하게 끓어서 한 숟가락 떠서 드실 때쯤, "엄마, 매워?" 하고.. 2026. 1. 28.
### [해방 일기] 제5화 : 퇴근 없는 일터로의 출근,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 온종일 가마솥 앞에서 뜨거운 김을 견디며 국밥을 날랐습니다.손님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기사님께 귀한 마늘 한 접시를 내어드리고 나면 제 어깨 위에는 묵직한 피로가 곰처럼 내려앉습니다. 드디어 '퇴근'이라는 두 글자를 품고 현관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저는 잠시나마 소파에 몸을 맡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엄마, 배고파", "엄마, 이거 어디 있어?"불 꺼진 거실 위로 비치는 주방의 풍경은 참혹하기까지 합니다.싱크대 가득 쌓인 설거지 더미, 바닥에 뒹구는 빨래 바구니, 그리고 정리가 필요한 식재료들... 국밥집의 앞치마를 벗어던지자마자 저는 이름만 바뀐 '집안일'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앞치마를 고쳐 맵니다. 집은 쉼터여야 하는데, 왜 저에게는 다.. 2026. 1. 25.
[해방 일기] 제4화 : 안쪽 자리의 온기, 그리고 항암마늘 한 접시 우리 국밥집의 낡은 나무문이 열리고 익숙한 엔진 소리가 멈추면, 저는 얼른 주방 안쪽, 가마솥의 온기가 가장 잘 닿는 '명당' 자리를 비워둡니다. 그곳은 1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차를 잃고 막막했던 저를 매일 아침 일터로 데려다주셨던 택시 기사님을 위한 자리입니다."앤, 오늘도 국밥 한 그릇 부탁해요."하얀 '모범' 셔츠를 단정하게 입으시고안경에 서린 김을 닦으며 인사하시는 기사님의 미소는 늘 새벽 공기처럼 맑습니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마음이 시렸던 시절, 기사님은 거울 너머로 "인생은 비가 오다가도 결국은 갠다"며 허허 웃어주시던 분이었지요.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저는 메뉴판에도 없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곤 합니다.바로 친정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귀한 '항암마늘'입니다.우리 집은 원래 생마늘을 내놓지.. 2026.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