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9

[해방 일기] 제 7화 : 여기까지 일까... 한동안 '해방 일기'가 소홀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 차마 하얀 화면 앞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비수기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보았지만, 올해 들어 반토막 난 매출 전표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시리고 아픈 일이었습니다.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 사이로 활기가 넘치던 공간. 이제는 손님들의 웃음소리 대신 시계 초침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텅 빈 테이블을 행주로 닦고 또 닦으며, 나는 내 불안의 먼지를 털어내려 애써 봅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가게 조명을 하나둘 끄고 나면, 썰물처럼 밀려오는 두려움에 속수무책으로 잠기곤 합니다."정말... 여기까지 일까."내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이제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진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은 이내 거대한.. 2026. 2. 14.
[해방 일기] 제6화 : 요양병원 어머니의 눈물 섞인 외출, 그리고 따뜻한 국물 한 그릇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리움, 요양병원 어머니의 서운한 진심을 뜨거운 전골 국물로 위로해 봅니다."모두가 잠시 숨을 고르는 오후 3시 30분, 브레이크 타임의 정적을 깨고 전화기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은 수화기 너머로 나이 지긋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언제 문을 여나요? 지금 근처인데..."아직 오픈 준비도 덜 된 시각, 쓱 하고 열린 가게 문으로 휠체어를 탄 백발의 할머니와 아드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오전에 가끔 노모를 모시고 오시던 반가운 단골분이셨지요. "어머니가 지난번에 여기서 참 맛있게 드셨다고 하셔서요." 아드님의 그 한마디에 저는 서둘러 앞치마를 고쳐 매고 주방 불을 켰습니다.전골이 보글보글하게 끓어서 한 숟가락 떠서 드실 때쯤, "엄마, 매워?" 하고.. 2026. 1. 28.
### [해방 일기] 제5화 : 퇴근 없는 일터로의 출근,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 온종일 가마솥 앞에서 뜨거운 김을 견디며 국밥을 날랐습니다.손님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기사님께 귀한 마늘 한 접시를 내어드리고 나면 제 어깨 위에는 묵직한 피로가 곰처럼 내려앉습니다. 드디어 '퇴근'이라는 두 글자를 품고 현관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저는 잠시나마 소파에 몸을 맡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엄마, 배고파", "엄마, 이거 어디 있어?"불 꺼진 거실 위로 비치는 주방의 풍경은 참혹하기까지 합니다.싱크대 가득 쌓인 설거지 더미, 바닥에 뒹구는 빨래 바구니, 그리고 정리가 필요한 식재료들... 국밥집의 앞치마를 벗어던지자마자 저는 이름만 바뀐 '집안일'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앞치마를 고쳐 맵니다. 집은 쉼터여야 하는데, 왜 저에게는 다.. 2026. 1. 25.
[해방 일기] 제4화 : 안쪽 자리의 온기, 그리고 항암마늘 한 접시 우리 국밥집의 낡은 나무문이 열리고 익숙한 엔진 소리가 멈추면, 저는 얼른 주방 안쪽, 가마솥의 온기가 가장 잘 닿는 '명당' 자리를 비워둡니다. 그곳은 1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차를 잃고 막막했던 저를 매일 아침 일터로 데려다주셨던 택시 기사님을 위한 자리입니다."앤, 오늘도 국밥 한 그릇 부탁해요."하얀 '모범' 셔츠를 단정하게 입으시고안경에 서린 김을 닦으며 인사하시는 기사님의 미소는 늘 새벽 공기처럼 맑습니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마음이 시렸던 시절, 기사님은 거울 너머로 "인생은 비가 오다가도 결국은 갠다"며 허허 웃어주시던 분이었지요.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저는 메뉴판에도 없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곤 합니다.바로 친정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귀한 '항암마늘'입니다.우리 집은 원래 생마늘을 내놓지.. 2026. 1. 19.
[해방 일기] 제3화 : 노란 조명 아래, 다시 시작되는 나의 일상 국밥집의 무거운 나무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코끝에 닿는 겨울 공기는 차가웠지만 마음만은 든든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의 허기를 채워주고,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는 안도감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거든요.하지만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안은 국밥집의 활기찬 온기와는 또 다른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옷을 갈아입기도 전, 거실 한가운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빨래들이 저를 반깁니다. "아, 맞다. 오늘 해야 했지."초록색 원피스로 갈아입지도 못한 채, 낮게 내려온 노란 전등불 아래 앉았습니다. 국밥집에서의 단정한 두건은 벗어던졌지만, 여전히 한 가닥으로 땋아 내린 머리칼 끝에는 오늘의 고단함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 둘. 가족들의 온기가 남은 옷가지를 개며 생각합니다. 국밥집에서의 내가.. 2026. 1. 16.
[제2화] "사장님~" 길 건너 들려온 인사가 준 선물 국밥집 주방에서 뜨거운 김과 씨름하다 보면, 가끔은 마음까지 홧홧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 마음에는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어요. 바로 단골 가족인 쌍둥이 자매와 막내아들, 그리고 인성 좋으신 부모님 덕분이었죠.가게 밖에서 잠시 일을 보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장님~~~!" 손을 힘껏 흔들며 환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엄마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친절은 메아리처럼 돌아옵니다그 가족은 올 때마다 홀 안이 환해질 정도로 친절하세요.아이들은 어쩜 그리 예의가 바른 지, 음식을 내어줄 때마다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죠.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항상 서비스 음료수를 슬쩍 내어드리게 됩니다.그런데 지난번에는 더 큰.. 2026. 1. 16.